그림의 시작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늘 그림을 그렸다. 스케치북과 물감을 사주면 하루나 이틀 만에 다 그릴 정도로 즐겨 그렸다. 초등학교 시절 남들 보다 탁월한그림에 대한 소질을 인정받아 여러 미술대회를 학교를 대표하여 나갔으며 국제어린이 미술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수상작을 전시했던 전시장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채화를 시작했으며 당시 그린 그림을 갖고 있다. 이후 중학교 들어가서 미술부 활동을 했으며 기초를 튼튼히 했던 시간이었다. 미술부 부장을 맡아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 여러 번 수상을 했으며 졸업 시 공로상을 수상했다. 졸업을 앞두고 유화를 처음으로 배웠으며 서울예고 입시를 위해 석고 소묘를 반 달 정도 배워 운 좋게 합격을 한다. 예고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이만익, 하동철 선생한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튼튼한 소묘와 색감은 이만익 선생한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며 하동철 선생은 외국의 최신 미술 경향에 대해 수시로 정보를 주었으며 다양한 형식 실험을 배우게 된다. 특히 세잔에 대한 관심과 공부는 하동철 선생의 수업에서 시작됐으며 팝이나 옵티컬 아트에 대해서도 일 찍 눈을 뜬 셈이다. 이후 홍익대학교에 입학하여 여러 교수들의 다양한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현대미술의 경향에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당시 유행했던 개념미술과 하이퍼리얼리즘 스타일의 사실주의 수업을 받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고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팝아트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미술사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 이론 과목을 가르치는 좋은 교수도 있었고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내 그림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군대를 갔다 온 후 본격적인 팝아트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게 되는 데, 당시 분위기는 재학 중 작가로 데뷔를 하는 추세라 3학년 때 앙데빵당에 출품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작품 생활을 하게 된다. 4학년에 들어서 몇몇 단체전에 초대되며 당시 사회적 문제에 관심과 80년대 정치 상황 등을 반영하며 일어나던 리얼리즘 회화 운동에 자연스럽게 편승한다. 또한 같이 공부를 했던 선후배, 동기 중 사회적 메시지를 주제로 그렸던 몇몇이 실천그룹이라는 미술동인을 결성하게 된다. 그리고 3학년부터 시작한 목판화를 부전공 같이 하면서 목판모임 활동도 겸한다. 이후 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운동에 참여하게 되며 좀 더 학문적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재학 중 1984년 서울미술공공체에 가입하며 미술의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20대 힘 전을 기획하여 미술판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 전시회에 출품한 < 타! 타타타타타 > 는 압수와 함께 내 작품 중 가장 선명한 주제와 형식을 가져오는 상징이 된다. 이 전시 탄압을 기점으로 민족미술협의회가 출범하며 협회 만화분과위원장을 맡아 만화정신이라는 책을 기획하다 두 번째 경찰에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처벌을 받게 된다. 두달 넘게 구속되어 있었으며, 이후 출감 후 변화된 정치 환경과 운동권의 분열로 민중미술과 관련 사회 운동을 해왔던 결과가 꽃을 맺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내 경우도 좌절과 분노로 단체 및 운동을 접고 생활인으로서 돌아가 학원 강사 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이 때 미술 교육 이론을 가리키며 관련된 이론 공부와 저술을 했으며 그림을 멀리 하게 된다. 90년대 들어서 다시 활동을 재개하며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과 민중미술15주년기년 전시에 참가하며 새로운 형식의 팝적인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에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독립애니메이션을 여러 편 제작했으며 미술과 만화의 접목을 시도한 < 아트툰 >으로 명명한 융합 형태의 전시 기획과 저술 등을 시도한다. 또한 만화비평에 관심을 두고 10년 넘게 비평지를 제작했으며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캐릭터 성 강한 팝아트-홍길동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 발표를 헸고 분단을 주제로 한 DMZ 시리즈를 오랜 기간 주제로 잡아 그리고 있으며 현재까지 다수의 전시에 참가하고 있다.